"잿더미 속에서 미래를 찾다"
도라빌 한인회관 화재 그 후 5년 2013년 5월 화재로 한인 보금자리 전소 1년 8개월 만에 건립기금 모금 ‘기적’ "50주년 기념행사, 미주 최대 도서관" 화마가 도라빌에 있었던 구 애틀랜타 한인회관을 집어 삼킨 지 이번 달로 5년이 됐다. 한순간에 보금자리를 잃은 한인들은 안타까움에 가슴을 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오히려 한인 사회를 결집시키는 계기가 됐고,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은 한인회 역사의 한 변곡점이 됐다. 이에 본지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현 노크로스 한인회관을 건립하게 된 과정을 돌아보고, 애틀랜타 한인사회를 대표하는 공간으로 변모해 갈 한인회관의 향후 역할을 조명해봤다. ▶화마에 휩쓸려간 한인회관 “참담한 광경” 2013년 5월21일 밤 아홉시 9시40분경, 귀넷 카운티 소방청에는 뷰포드 하이웨이 선상 한인회관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소방대원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누전으로 시작된 불은 이미 노인회관을 집어삼키고 한인회 사무실까지 번지고 있었다. 소방관들은 이튿날 동틀녘까지 불길과 씨름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아침 해가 비춘 노인회관은 이미 잿더미가 되어 있었다. “남은 것은 빈 그릇 몇 개 뿐이었다. 참담했다”고 나상호 노인회장은 당시를 회상했다. 한인회 사무실도 2층은 접근이 불가능할만큼 훼손됐고, 1층 도서관도 책 한권을 건질 수 없는 수준까지 피해를 입었다. 한국학교 사무실도 학생 명부와 모든 자료들이 불탔다. 성한 곳은 화재 당일 저녁까지 재향군인회 행사가 열렸던 문화센터 뿐이었다. 불은 꺼졌지만, 이튿날부터 도둑이 들기 시작했다. 김영우 안전기동대장은 화재 후 2박 3일 동안 2교대로 밤을 세워가며 회관을 지켰다. 그는 “도둑들은 차를 타고 오는 게 아니라, 숲에서, 길가에서, 사방에서 나타났다. 우리 것은 우리가 지켜야 않겠냐는 생각으로 밤을 새서 여러 명의 도둑을 퇴치했다”고 말했다. ▶노크로스에 임시 거처 마련 제30대 한인회와 애틀랜타 한국학교는 이국자 부회장이 무상으로 임대한 노크로스 사무실 건물에 임시거처를 마련하고, 보험 처리 등의 업무를 마무리했다. 김백규 전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도 이곳에서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다. 노인회는 노크로스 복음동산 장로교회에 임시 거처를 마련해 활동을 이어갔다. 2014년 취임한 31대 오영록 한인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한인회관이 불타는 것을 보고 회장 출마를 결심했다”고 했을만큼 건립위원회와 함께 새 보금자리를 만드는 일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당시 회관 재건립의 방향을 놓고 여러 의견이 엇갈렸다. 불탄 회관을 보수해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한인 밀집 거주지와 가까운 곳에 새 건물을 건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충돌했고, 유대인 커뮤니티센터처럼 도심에 한인회관을 차려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건립위는 결국 김백규 위원장의 제안대로 노크로스에 있는 현 한인회관 건물을 245만달러에 구입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당시 건물은 중고차 경매장으로 처음 지어졌고, 힌두 사원으로 사용됐지만 비어있는 상태. 하지만 건립위 내부에서도 막대한 액수를 모금할 수 없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제기됐다. ▶1년 8개월 만의 ‘기적’ 김의석 전 한인회장은 당시 기금모금을 진두지휘했던 김백규 회장의 추진력이 “마치 불도저 같았다”고 회상했다. 김 위원장은 2014년 3월 한인회 이사회 자리에서 계약금 10만달러를 지출을 요구하며 “기금모금이 원활치 않아 건물 매입에 실패했을 경우, 계약금 10만달러의 손실은 내가 책임지겠다”며 “차기 한인회에 모기지를 물려주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위원장이 먼저 10만달러를 쾌척하며 물꼬를 트자, 전·현직 한인회 임원들 단체, 한인 기업, 그리고 그 전까지 한인회 활동에 참석하지 않았던 한인들까지 주머니를 열었다. 세뱃돈을 기부한 다섯살 쌍둥이 남매, 학교에서 도넛을 팔아 모은 건립기금으로 가져온 고등학생들, 세상을 떠나며 유산을 한인회에 기증한 노인 등, 한 명의 기부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열었다. 1000명 이상의 한인들이 자발적인 모금운동에 동참하는 모습을 본 한국의 재외동포재단에서도 20만달러를 지원했다. 결국 2015년 2월13일, 노크로스에 있는 현 한인회관이 문을 열었다. 화재 1년 8개월 만의 쾌거였고, 많은 이들은 이를 ‘기적’이라고 불렀다. 회관을 행사장으로 대관하고 수익금으로 한인회 운영비용을 마련하는 것이 한인회의 목표였지만, 문을 연 한인회는 수년 간 빈 건물이었던 만큼 행사장으로서는 열악한 환경이었다. 이 때문에 2016년 취임한 32대 배기성 회장 재임기간 동안 한인회관에는 ‘뚝딱뚝딱’ 망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다음 사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 진짜 일을 할 수 있도록 해놓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건물 안팎으로 페인트가 다시 칠해지고, 조경과 음향장비가 향상되고, 주차장 바닥의 깨진 곳들이 메워졌다. ▶‘도약’ 앞둔 한인회, 그리고 세계 최대규모의 한인회관 한인회가 코리안 페스티벌을 한인회관에서 열기로 결정했을 때, 많은 이들은 ‘그들만의 잔치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제기했다. 하지만 한인회관에서 3년차를 맞은 지난해 코리안 페스티벌은 케이팝 열풍에 힘입어 수많은 타민족 젊은이들의 놀이터가 됐다. 한인회는 올 가을 설립 50주년을 맞아 성대한 기념행사를 준비 중이다. 도서관도 정비해 미주 최대 규모의 한국 서적 도서관으로 꾸민다는 예정이다. 일부에서는 ‘한국학교의 한인회관 사용’과 같이 규모에 걸맞는 방향으로 더욱 많은 한인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한인회관의 용도가 더욱 확대되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일홍 회장은 “이민 50주년 기념행사를 계기로 한인회관은 한인들이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한인사회의 사랑방으로 발돋움할 것”이라며 “늘 열려있고, 많은 이들이 왕래하는 곳이자, 한인들의 관심과 방문을 먹고 자라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현범 기자